ⓒ 정종현기자
[충북일보] 이른 새벽을 알리는 수탉의 울음소리가 차고지를 가득 메웠다.
청주시 상당구 월오동의 한 버스 차고지가 흰 와이셔츠를 입은 버스 기사들로 붐볐다. 몇몇 버스 기사들은 요금통을 들고 버스 사이를 오갔다.
6일 새벽 4시 30분. 경력 14년 차의 베테랑 버스기사 고재춘(61)씨가 휴게실에 들어섰다. 그가 제일 먼저 찾은 것은 휴게실 한켠에 비치된 커피자판기였다. 휴게실로 들어오는 다른 버스기사들도 하나같이 커피자판기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른 새벽에 피곤함을 떨치려 마시는 거죠. 하지만 이것도 만성이 돼서 좀처럼 피곤함이 가시지 않아요."
청주시내버스를 운행하는 우진교통의 경우 오전 팀이 새벽 5시부터 낮 12시까지, 그 이후에는 밤 11시까지 오후 팀이 운행한다. 두 팀은 나흘에 한 번씩 팀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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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전 팀에 배치된 고씨는 841번 버스의 운전대를 잡았다. '청주시 서원구 산남동~청원구 정하동' 구간을 오가는 이 노선은 '수곡중학교' 정류장부터 시청과 도청을 거쳐 '정하종점지' 를 순환한다.
손님이 많고 번잡한 시가지를 경유하는 코스라 배차시간을 맞추기 까다로운 노선으로 꼽힌다.
새벽 5시가 다가오자 몇몇 버스기사들은 커피를 마실 새도 없이 피곤한 눈으로 음주측정기 앞에 섰다.
입으로 음주측정기 구멍에 바람을 불자 작은 화면에서 숫자들이 오르락내리락하더니 'OK' 표시가 떴다. 승객들을 만날 수 있다는 신호였다. 고씨도 음주측정을 마치고 10년을 함께한 '충북70자5017' 버스에 시동을 걸었다.
새벽 5시. 첫 안내 방송이 나왔다. '다음 정류장은 수곡중학교입니다.'
운행 준비를 마친 841번 버스가 동이 튼 새벽 도로를 갈랐다.
주말 새벽이라 버스정류장은 한산했다. 승객은 한 명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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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달린지 30여분. 고씨 연실 코를 훌쩍였다. 차가운 에어컨 바람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씨는 에어컨 버튼을 만지지 않았다.
"온종일 에어컨 바람을 쐬느라 콧물을 달고 살죠. 감기 몸살도 툭하면 걸려요. 그래도 에어컨을 끌 수는 없답니다. 요즘 같이 푹푹 찌는 날에는 새벽부터 빵빵하게 틀어놔야 승객 불만이 없거든요."
술에 취한 중년 남성이 '서운동' 정류장에서 비틀거리며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한동안 기사를 노려보더니 자리에 앉았다.
"'왜 인사를 안 하느냐'는 시비는 일상이고, 운전이 마음에 안 든다고 폭행을 하는 승객도 있어요. 첫 차 기사는 마음 단단히 먹고 운행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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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 마지막 정류장인 '정하종점지'에 다다랐다.
이곳에서 쉴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3분. 법적으로 보장된 10분가량의 휴식 시간은 버스 바닥을 청소하는데 모두 허비됐다.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탓에 버스 내 공기가 좋지 않아요. 신발에서 떨어진 흙먼지가 에어컨 바람을 타고 날리기 때문이죠. 잠시라도 청소를 하지 않으면 승객들로부터 꾸중(?)을 듣기도 한답니다."
귀한 휴식시간을 취재진에게 내준 고씨가 다시 시동을 걸었다. '이제야 몸이 풀린 것 같다'는 그는 "늙은 나이에 콧물을 훌쩍이고, 승객의 시비도 받아가며 버스를 운전해야 하지만 나름대로의 보람도 있다"며 "특히 첫 차는 하루를 시작하는 승객들과 함께 한다는 점에서 더욱 매력을 느낀다"고 웃어보였다.
/ 정종현기자 jhpostpo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