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생명의 본질입니다. 자유는 인간의 본성입니다. 자유는 과거의 연민이 아니라 현재의 정체성(道)입니다. 통찰이고 지혜입니다. 자유는 두께 없는 칼날이 틈이 있는 뼈마디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자유하는' 것입니다. '자유한다'는 것은 생명을 북돋는 근원적 흐름과 하나 되는 것입니다. 무애(無碍)입니다. 막히거나 거칠 것이 없습니다.
청주시는 자유하십니까? 자유는 권력의 언어가 아닙니다. 자유는 일하는 사람들의 언어입니다. 시민의 언어입니다.
인간의 역사에서 자유란 권력으로부터 자유를 말합니다. 권력이 내세우는 자유는 자유가 아닙니다. 권력의 자유는 공포스럽습니다. 권력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자유에 불과합니다. 권력의 자유는 법의 이름으로 세탁 되어 검(劍)같은 행정이 됩니다. 이러한 자유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집니다. 오히려 자유로부터 도피합니다.
청주시는 결코 자유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청주시 권력자들과 기득권자들은 자유하십니까? 권력자들의 생각과 성정은 행정으로 표현됩니다. 행정은 오만과 군림이 아닙니다. 이성과 섬김에 기초해야 합니다. 섬김과 겸손은 머리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숙이는 것입니다. 행정의 이름으로 권력욕을 위장해서는 안 됩니다. 공공의 이름으로 포장 되어 다른 사람의 자유와 권리를 빼앗아도 안 됩니다. 행정으로 표현되는 권력의 덫은 너무도 다양하고 두텁습니다. 때로는 무소불위의 공권력으로 철옹성을 구축합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같습니다.
그 누구도 수년간 보존을 논의해 온 청주시 구청사를 일거에 무너뜨릴 자유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시민도 흙탕물 들이치는 오송 지하차도에 빨간 747 시내버스 운행을 중지시키지 않을 자유를 위임하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노동자도 준공영제를 빌미로 노동권과 생존권을 축소시킬 자유를 청주시 권력에 주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사회적 관계와 소통하고 통찰하는 지혜가 사라졌습니다. 한 면만 바라보고 전체를 판단합니다. 사적 감정과 사적 관계가 영향을 미칩니다.
시민을 보호하는 행정의 절대성이 흔들립니다. 행정의 기득권을 지키는 권력의 자유만 휘날립니다. 권력이 자유하는 사회는 파시즘이나 전체주의입니다.
시민들의 삶이 무력해집니다. 청주시 권력의 자유는 시민들을 자유하게 하는 자유만을 누려야 합니다. 자유를 망설이는 것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권력의 칼은 위협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을 쥐고 있는 사람의 의지와 생각이 위협적인 것입니다. 권력과 권력자들의 자유가 더 이상 유령처럼 떠돌아서는 안 됩니다. 시민들은 자유해야 합니다. 차별없이 자유해야 합니다. 행정이 권력의 우상에서 벗어나 시민의 이성을 찾아가야 합니다.
이제는 자유하게 하는 청주시가 되어야 합니다. 노동자자주관리기업 우진교통도 더 해맑게 자유하겠습니다. 맑은 고을 청주를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