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항쟁이 제 인생을 바꿨죠"
5·18민주화운동 30주년, 충북 노동운동계 맏형 김재수씨
"80년 5월 광주민주화 운동은 서민들의 자발적인 공동체 문화의 또 다른 표출 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충북대 재학 당시 신군부의 억압적인 통치에 맞서 청주지역 대학생들의 시위를 주도한 혐의(계엄포고령 위반)로 옥고를 치렀던 김재수(51·우진교통 대표)씨는 "광주항쟁을 계기로 지난 30년의 세월동안 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하면서 살아 오게 됐다"며 소회를 밝혔다.
20대 시절부터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졌던 김 대표는 어느 새 충북지역 노동운동계의 맏 형이 돼 버렸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 87년 민주화 운동, 89년 노동자 대투쟁, 92년 대통령 선거 등 우리나라 현대사의 굵직한 현장엔 늘 그가 있었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해 내란죄가 확정되었고 지난 2000년 계엄포고령 위반 혐의가 무죄가 된 김 대표는 광주민주화 유공자로 인정받으며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받게 된다.
이후 정부로부터 광주민주화 유공자 포상금을 받게 된 김 대표는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살림살이가 빠듯하긴 하지만 포상금을 개인적으로 쓰는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다.
김 대표는 지역의 몇몇 인사들과 상의해 포상금의 대부분인 수천만원을 지역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자녀들에게 장학금으로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 울타리 장학회다.
김 대표는 울타리 장학회 운영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기로 하고 장학금을 기탁했다.
김 대표는 "광주민주화 운동 유공자로 인정받은 것은 당시 광주항쟁이 지역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국적인, 즉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으로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광주 뿐 아니라 신군부에 맞서 전국적으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집회와 시위가 있었는데 이를 그동안 지역의 문제로 축소시켰다는 것.
이후 노동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김 대표는 청주에서 노동자의 집을 운영하고, 지난 96년 민주노총 출범의 결정적 역할을 맡게 된다.
김 대표는 민주노총 출범 이후 4번에 걸쳐 민주노총 충북본부 사무처장을 역임하면서 지역 노동운동을 이끌어 왔다.
이런 가운데 김 대표는 우진교통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지역의 영세 운송업체인 우진교통이 지난 2004년 체불임금과 상여금 문제로 파업에 돌입하고 김 대표는 사태 해결을 위해 적극 개입하게 된 것.
우역곡절 끝에 지난 2005년 노동자들의 자주관리기업으로 살아난 우진교통은 지금도 270여 가족이 희노애락을 함께 하며 살아가고 있다.
김 대표는 "우진교통은 형식은 주식회사지만 직원들이 1인 1표제에 의해 인사권과 주요자산 처분, 주요정책을 결정하는 자주관리 기업이다"고 말했다.
주인이 없는 회사는 나태해 질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김 대표는 "기업의 평가는 재무제표 이상으로 구성원들의 의식수준과 기업문화의 가치도 중요하다"며 "그런 면에서 우진교통은 현재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발판과 잠재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부도 직전까지 가는 등 어려움을 겪었던 우진교통은 오는 8월께 금융권 거래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극격한 혼돈의 시기에 이념으로 무장하며 한 시대를 살아 온 김 대표는 우진교통에서 생활하며 사람의 행복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에 빠졌다.
김 대표는 "20대부터 쉼 없이 앞 만 보고 달려 온 것 같은데 우진교통 가족들과 부대끼면서 요즘에는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가치가 물 밑에서 숨 쉬는 느낌이 든다"며 "앞으로도 우진교통이 자립적인 공동체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이들과 생활하는 동안 더 많이 배우고 노력 하겠다"고 말했다. /
2010년 05월 16일 (일) 21:02:52 지면보기 3면 유승훈 기자 idawoon@jbnews.com